
브릭스 정상회의, 미국 없는 세계질서의 시작일까?
BRICS의 역사와 ‘미국 왕따’ 논란, 그리고 달라지는 세계 파워질서
2026년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제18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중국·러시아·인도 등 신흥국 정상들이 모였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정말 흔들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의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특히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브릭스가 어떤 공동 입장을 내놓을지가 핵심 관심사였다
그렇다면 브릭스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지금 이렇게 커지고 있을까?
1. 브릭스의 시작은 ‘BRIC’이었다
브릭스의 출발점은 의외로 국제정치가 아니라 경제학자의 보고서였다.
2001년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 짐 오닐은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의 앞글자를 따서 BRIC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당시 핵심 메시지는 간단했다.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만은 아닐 것이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은 인구가 많고 자원과 성장잠재력이 큰 국가였다. 처음에는 투자자를 위한 경제적 개념에 가까웠지만, 2009년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제 국제협력체로 발전했다.
201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하면서 이름이 BRICS가 됐다.
이후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브릭스의 성격도 달라졌다. 단순한 신흥국 경제협력체에서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적 플랫폼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2. 브릭스는 왜 갑자기 커졌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2024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확대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가 합류했고, 2025년에는 인도네시아까지 참여했다. 이제 브릭스는 과거의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이라는 작은 그룹과는 완전히 다른 규모가 됐다.
특히 중요한 것은 회원국의 지정학적 위치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적으로 경쟁하고 있고, 이란은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한다. UAE 역시 미국과 안보협력을 하면서 중국·러시아와 경제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즉, 브릭스는 ‘반미동맹’이라기보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들이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모인 플랫폼에 더 가깝다.
3. 정말 ‘미국 왕따’가 되는 것일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브릭스를 곧바로 ‘미국 왕따 연합’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브릭스는 NATO처럼 군사동맹이 아니다. 회원국들이 하나의 군사전략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과 인도처럼 서로 경쟁하는 국가도 있다.
오히려 브릭스의 핵심은 **“미국을 몰아내자”보다는 “미국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자”**에 가깝다.
대표적인 분야가 달러다.
브릭스 국가들은 자국 통화 결제 확대와 독자적인 금융·결제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의 UPI, 브라질의 Pix 같은 결제 시스템을 국경 간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달러의 세계적 지위가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국제무역에서 달러가 독점적으로 사용되는 구조에는 균열이 생길 수 있다.
4. 세계 파워질서는 ‘미국 1강’에서 ‘다극체제’로?
현재 세계질서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단극적 세계질서에서 중국·러시아·인도·브릭스 국가 등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다극적 세계질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브릭스 확대가 에너지, 핵심광물, 제조업 공급망뿐 아니라 금융·투자 분야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릭스가 갖는 힘은 단순한 GDP 숫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구 + 에너지 + 식량 + 핵심광물 + 제조업 + 시장 + 지정학적 위치가 결합돼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제조업, 러시아의 에너지·자원, 인도의 인구와 IT, 브라질의 식량과 자원,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가 연결될 경우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5. 하지만 브릭스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브릭스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정부’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직 무리다.
가장 큰 문제는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 문제를 둘러싸고 경쟁한다. 러시아와 인도의 관계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와 동일하지 않다. 이란과 UAE 역시 중동에서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번 뉴델리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드러났다.
특히 이란과 UAE가 모두 브릭스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중동전쟁에 대해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브릭스가 이란과 UAE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 입장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브릭스의 미래는 회원국 숫자를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얼마나 실제적인 경제협력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 미국의 몰락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늘어난 세계’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를 바라보는 가장 적절한 관점은 ‘미국 왕따’가 아닐 것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세계가 미국 하나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여러 선택지가 존재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 중동의 불안,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각국은 한쪽 진영에 완전히 편승하기보다 여러 국가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인도는 미국과 협력하면서 브릭스를 이끌고 있고, UAE 역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한다. 이런 모습 자체가 새로운 국제질서의 특징이다.
따라서 브릭스의 진짜 의미는 **“미국을 쫓아내는 조직”이 아니라 “미국 이외의 선택지를 제도화하는 조직”**이라는 데 있다.
앞으로 브릭스가 결제망, 금융, 에너지, 공급망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낸다면 세계는 더욱 빠르게 다극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21세기 국제정치의 핵심 질문은 “누가 미국을 이길 것인가?”가 아니다.
“미국·중국·브릭스·유럽·인도 등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누가 더 많은 선택권을 확보할 것인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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